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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콜리너마저'에 해당되는 글 1건
2009. 2. 21. 10:37
'어디선가 읽었는데...영화잡지였어...씨네21? 타다다닥...없네...한겨레21이었나?...타다다닥...없네...' 네이버 검색 알바들의 초이스가 아직 여기까지는 미치지 못했나 봅니다. 구글을 뒤지니 나오는군요. 필름2.0에 실렸던 브로콜리너마저 보컬 '계피'양이 털어놓는 첫 음반의 녹음과 밴드 결성에 관련된 비화입니다. 필름2.0 사이트 접속에 문제가 있어서 구글에 저장된 페이지를 긁어다 옮겨 놓습니다.


1. 녹음전선 이상없다.

집 안에서 이불을 적극 활용해서 첫 EP를 제작했던 눈물의 인디 밴드 ‘**** 마저’ 드럼 녹음을 하기 위해 빌렸던 남양주 창고의 포스가(추위가) 새록새록 느껴지네요. 그렇게 찌질대며 녹음한 음반의 음질이 물론 좋을 리가 없었습니다. 모 네티즌에게서는 이런 음질 주제에 돈 받고 파냐는 말도 듣고 말이죠, 후후. 그랬던 저희지만 이제는 참한 스튜디오에서 1집을 녹음하고 있습니다. 지지난 주 모 잡지의 인터뷰에서는 “전작에 비교해서 새 앨범은 ( )만은 ( )배 좋아질 것이다”란 문장 속 괄호를 채워달라는 요청을 받았었죠. 그래서 저희는 당당히 채웠습니다! (음질), (1000).

오늘로써 10회차 녹음이네요. 지난 회에 이어 보컬 녹음이 있는 날이죠. 보통 녹음은 리듬악기인 드럼, 베이스, 멜로디 악기인 어쿠스틱 기타, 일렉기타, 키보드, 보컬 순으로 이루어집니다. 박자가 먼저 있어야 거기 맞춰서 악기 연주를 하고, 그렇게 반주가 다 완성되면 보컬이 있는 감수성 없는 감수성 닥닥 긁어서 녹음을 하는 거죠. 하지만 악기보다 보컬은 하루에 소화할 수 있는 곡의 수가 더 적습니다. 목이 피로해지면 좋은 음색이 안 나오니까요. 보컬 분량을 최대한 분산시키기 위해, 악기들을 녹음하는 중간 중간 보컬 녹음을 하기로 했어요.

녹음실을 소개해볼까요. 녹음실은 음을 제어하는 콘솔이 있는 컨트롤 룸과 연주자가 들어가서 연주를 하는 방음 부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방음 부스 안에서 녹음을 하고, 컨트롤 룸으로 나와서 모니터를 하며 녹음 상태를 최종적으로 확인하죠. 부스 안 헤드폰으로 듣는 소리와 컨트롤 룸의 대형 스피커로 듣는 소리는 질감이 다르거든요.

처음 부스 안에 들어가면 기분이 좀 이상합니다. 제가 내는 소리는 등 긁는 소리든 숨 쉬는 소리든 고가의 마이크에 이 잡듯 잡혀 컨트롤 룸으로 나가고, 컨트롤 룸의 소리는 엔지니어 언니가 연결 버튼을 눌러주지 않으면 저는 절대 들을 수 없습니다. 답답해서 모니터도 할 겸 저번 녹음 때는 곡 중간 중간 나와서 과자도 집어먹고 그랬죠. 그러다 보니 한 곡 안에서의 음색이 자꾸 달라지더라고요. 그래서 인상 쓰면서 “나 이제 한 곡 끝나기 전까진 부스에서 나오라고 하지 마”라고 멤버들에게 말했었죠. 그랬더니 엔지니어 언니가 “원래 다른 사람들은 그럴까 봐 안 나와요. 먹지도 않고 물만 조금 마시고”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저는 빵을 우걱우걱 씹고 있던 중이었죠… 그 뒤부터는 한 곡이 끝나기 전까진 나오기는커녕 자세도 제대로 바꾸지 않습니다. 아, 이 험난한 육체노동자의 세계.

제 보컬 녹음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일단 한 번에 한 곡 전체를 다 부른 후 모니터를 하고, 고칠 점을 지적받은 다음, 다시 부분 부분 녹음을 하죠. 잘 안 되는 곡의 경우 곡 앞과 중간에 있는 버스(Verse)부터 다 녹음한 다음 1절과 2절의 후렴을 몰아서 녹음하기도 해요. 그때 주의할 점은 감정선입니다. 노래의 흐름이 끊기기 쉬우니까요.

하지만 저는 워낙 기교를 부리지 않는 보컬이기 때문에 크게 맥이 끊기는 경우는 드뭅니다. 스튜디오에서 처음으로 제 목소리를 ‘제대로’ 들어보면서 느낀 점은, 제 목소리는 힘을 뺀 담백한 스타일에 최적화되어 있다는 겁니다. 원래 말하듯이 편하게 부르는 걸 선호하긴 하지만 어쩐지 아쉽기도 해요. 언젠가 한 번쯤 소몰이도, 바이브레이션도 시도해보리라는 로망을 가슴에 품어보는 보컬, 계-피.(달려라 하니 풍으로 읽어주세요.)

오늘의 관건은 내레이션입니다. “언젠가 넌 내게 말했지/ 슬픈 이별이 오면/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친구가 되어줄 수 있겠냐고”라는 노래 다음에 “아니, 그런 일은 없을 거야”라고 재빨리 말해야 합니다. 남녀 보컬 두 명 중 누가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두 명 다 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생전 처음 알았습니다. 내레이션이 얼마나 민망한 건지. 성우 여러분 존경합니다! 두 명 다 컨트롤 룸에서 스스로의 모니터를 할 필요도 없는 사태가 발생했죠. 다행인 것 같아요. 모니터를 했으면 수명이 감소했을지도… 아무래도 다음 시간에 다시 해야 되겠죠. 하지만 상대가 한 걸 들으며 마음껏 웃었기에 아무 소득이 없었다고는 볼 수 없을지도요. (ㅋㅋ)

하루의 보컬 녹음 분량을 끝내고 나니 몸에 힘이 빠지네요. 아무래도 아침부터 빨빨거리고 돌아다닌 게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일찍 일어나서 낙원상가에 어쿠스틱 기타용 습도조절계를 사러 갔거든요. 며칠 전부터 독감 예방주사를 맞으러 가려고 별러왔었는데 그건 못 가서 기분이 좀 찜찜합니다. 발매 쇼케이스 때 “(정조 모드로) 노래가 졸렬하다”라는 비난을 듣지 않도록 내일은 꼭 병원에 가야 할 것 같네요. 감기에 안 걸렸는데도 비난을 들으면? 음…

Profile_ 인디 밴드 ‘브로콜리 너마저’의 기타 겸 보컬. 지난 2년간 대학가요제와 쌈싸페 등의 경연대회에서 활발히 떨어지다가 2007년 첫 EP를 발매하고 묘하게 빛을 보았다.(고 본인은 자부함.) 현재 직장인과 학생인 멤버들의 스케줄을 조정하느라 분투 중.


2. 밴드결성비화

어제 녹음실에서는 케이크에 초하나 꽂고 다섯 명이 불었습니다. 비록 누가 하나 둘 셋 하기 전에 먼저 불었나 옥신각신하긴 했지만, 역시 EP 발매 1주년이란 건 좋은 날인 것 같아요. 몇 장 팔렸나 새삼 세어보기도 좋고요.(ㅋㅋ) 하지만 그래서 얼마를 벌었나까지 계산하면 우울해지기 때문에 거기까진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결성 당시 얘기나 해볼까요.

어디 보자, 저희가 대학가요제에서 가열차게 떨어졌을 때 얼짱 ‘Ex’가 대상을 받아 데뷔했으니 그때가 2005년이네요. 그때 보컬 이상미 씨가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귀여운 표정과 제스처로 시청자들을 녹다운시켰었죠. 저도 동영상을 여러 번 돌려봤었습니다. 당시 드러머가 “우리가 대상을 탔다고 하더라도 ‘Ex’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못했을걸요”라고 말한 게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네요. 그때는 이 인간들을 3년 반 뒤에도 볼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었습니다만.

제가 처음 저희 밴드 멤버들과 만난 것은 인터넷을 통해서였습니다. 눅눅한 여름, 임계피는 할 일 없이 웹서핑을 하던 중 붕가붕가 레코드라는 음음한 이름의 레이블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관악청년포크협의회라는 이번에도 역시 녹록지 않은 이름의 컴필레이션 음반도 맞닥뜨리고요. ‘뭐야 이건’ 하면서 음반을 산 저는 ‘흠 나쁘지 않은데’라고 여기게 됩니다. 그리고 앨범 재킷에 적힌 뮤지션들의 홈페이지를 하나하나 가서 확인하죠. 그중 모 사이트에 ‘목소리와 손을 빌려줄 사람을 찾습니다’라는 글이 올라와 있더군요. 그게 바로 저희 밴드 베이스 윤덕의 사이트였습니다.

그 당시 저는 독립영화판에서 서성이던 질풍노도의 대학 저학년생이었습니다. 아는 언니가 자기 단편에 조감독으로 오라고 하던 참이기도 했고요. 하지만 이때가 아니면 다시 밴드를 하지는 못하겠구나, 라는 직감이 들었던 저는 장렬하게 영화를 포기합니다. (그리고 영화계는 혹을 하나 떼어내게 됩니다.)

그리고 오밤중에 기타와 노래를 녹음해서 윤덕에게 보냈죠. 녹음 프로그램은 윈도 보조프로그램에 있는 녹음기였습니다. 케이크워크라는 녹음 전문 프로그램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뭐가 문젠지 인스톨이 너무 안 되는 바람에 귀찮아져서 말이죠. 그때 녹음기는 최대 1분밖에 녹음이 지원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두 곡을 각각 딱 1분에 맞춰서 할 수밖에 없었죠. 그 두 곡은 지금도 윤덕이 심심하면 틀어주면서 저를 굴욕에 빠지게 하는 데 절찬리 이용되고 있습니다.

처음 멤버들을 만났던 날이 떠오릅니다. 홍대역 KFC 앞에 알도 없는 뿔테를 끼고 윤덕이 나타났었죠. ‘이것 봐라?’ 했던 저는 윤덕이 “댄스음악이 하고 싶다”고 말할 때 다시 한 번 ‘이것 봐라?’라는 말을 되뇌게 됩니다. 아니 포크음악 듣고 찾아온 사람한테 그런 소리를. (그 뒤 윤덕은 다른 밴드에서 불꽃 같은 댄스 스피릿을 과시하죠.) 밴드명 후보라며 키보디스트인 잔디가 들이민 연습장 위에 ‘엄마 쟤 흙 먹어’라든가 ‘초광폭 베란다’ ‘옛날의 금잔디’ 등등이 쓰여 있는 걸 보고 저는 또 다시 같은 말을 떠올렸습니다. B급 공포영화와 각종 수상한 만화들을 좋아할 뿐 지극히 평이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는 일개 소시민인 저로서는 적응하기에 약간의 어려움이 있다 하지 않을 수 없었죠.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복병은 연습실에 있었어요. 담배꽁초와 빈 깡통과 음식 쓰레기와 먼지와 파리가 손잡고 춤을 추고 있는 그곳은 정말 놀라웠습니다. 하지만 역시 인간의 적응력이라는 건 놀라워서 처음엔 조금씩 치우던 저도 브로콜리의 세계에 마침내 안착(패배)하고 말았죠. 나중에는 치킨집에서 준 동방신기 포스터도 벽에 걸어놓는 여유까지 가질 수 있었습니다. 멤버들의 차가운 반응은 물론 무시하고요. 단지 방음재가 벗겨진 부분을 가리고 싶었다는 말을 덧붙이는 건 구차한 일이었습니다. 아니 우리 시아준수가 어때서!

지금은 그 연습실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 시절이 아주 살짝 그립네요. 난로도 에어컨도 없어서 계절감을 온몸으로 만끽할 수 있었지요. 안에서 연습하다가 밖으로 나가면 순경이 듣고 있다가 말을 건 적도 있었어요. 자기도 밴드 하고 싶었다고 하면서 말이죠. 언제 공연하냐기에 모월 모일 클럽 잼머스에서 한다고 말해줬었어요. 물론 그 후 다시 본 적은 없습니다.

지금까지 은근히 잦은 멤버 변동이 있었네요. 그 당시 한가인을 닮았었던 남자 드러머는 자느라 공연까지 펑크 내는 바람에 아쉽게도 함께하지 못하게 되었죠. 저처럼 붕가붕가 레코드에 호감을 가지고 찾아온 새 드러머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 입시를 준비한다며 나갔고요. 그 드러머가 소개시켜준 여리여리한 아가씨가 저희의 현 드러머 류지입니다.

류지가 들어올 때 리드기타 향기도 같이 들어왔네요. 새 포지션이 생긴 건 제 제안 때문이었죠. 제 보컬 비중은 점점 커지는데 노래 부르면서 할 수 있는 기타 플레이는 한정될 수밖에 없었거든요. 그렇게 해서 저희는 현재의 다섯 명 라인업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남자가 한 명이고 나머지는 여자들이라는 건 인터뷰 때 관련 질문을 받으면서 처음 인식하게 된 점입니다. 딱히 일부러 여자들로 채우려고 한 건 아니에요. 저라고 그러고 싶었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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