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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1. 20. 18:31
2008. 11. 20. 13:41
오늘 점심 먹으러 가다가 발견한 커피+요거트 아이스크림+와플 가게입니다. 다른 집과 다른 점은 매일 매일 고객에게 새로운 깜짝 선물을 제공한다는 겁니다. 이를테면, '안경 쓰신 분, 오늘만 10% 할인'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이런 종류의 깜짝 선물은 새스 고딘의 '보랏빛 소가 온다'에서 무언가를 리마커블하게 만드는 요인 가운데 하나로 언급된 적이 있죠. 아주 소박하지만 말입니다.

다만 아메리카노는 좀 싼 원두를 쓰나 봅니다. -_-

실내에는 고객(사진)작품란도 있습니다. 작지만 깜찍한 아이디어죠.


2008. 11. 20. 10:05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평생 최고의 드립을 맛 본 듯 합니다. 쵝~오!

 

2008. 11. 19. 09:54
10년 전에도 경제는 어려웠고, 5년 전에도, 지금도 여전히 경제는 어렵습니다. 얼마 살지 않았지만 최소한 언론을 통해서 접한 경제는 언제나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경제를 살립시다'라는 구호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어쩌면 '어려운 경제'에 대한 '환상'은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 비롯된 것은 아닐지 싶습니다. 어쨌든 '경제를 살리자'는 구호 아래 많은 사람들이 너무 큰 희생을 강요 당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서 마음이 쓰라립니다. 
2008. 11. 12. 13:09
  
자식을 가슴에 묻고 지내는 어머니들이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절규하고 있다.
ⓒ 이철우
군의문사

"어떻게 키웠는데, 네가 죽다니…." "사랑한다! 아들아, 엄마가 왔어!"

현충일을 이틀 앞둔 4일 '2008년 군·경 의문사 희생자 합동 추모제'가 열린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전통문화예술 공연장은 유가족들의 비통한 눈물로 넘쳐났다.

유가족들은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군의문사위, 이해동 위원장)에 접수한 희생자 614명의 이름이 빼곡히 적힌 현수막 위패를 앞에 두고 오열했다.

천주교인권위원회가 주관하고, 군·경 의문사 희생자 합동 추모제 준비위원회가 주최한 이날 추모제에는 군에서 자식과 형제, 부모를 잃은 유족과 군의문사위 관계자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몇몇 어머니들은 추모제 시작 때부터 흐느꼈다.

이해동 위원장은 추모사에서 "600여 영령의 영전에 깊은 애도와 명복을 빈다"라며 "나라를 위해 군대에 보낸 아들의 싸늘한 죽음이 닥쳐왔을 때 어찌 어버이들의 억장이 무너지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유가족의 아픔을 위로했다.

이 위원장은 이어 군의문사위 활동이 올해 말 끝나는 것을 거론하며 "앞으로 남아있는 기간 동안 믿기지 않는 죽음들을 진상 규명하여 억울함을 풀어드리도록 힘쓰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위원회가 법과 제도개선 작업을 할 수 있다면 측면에서나마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군 의문사위원회, 활동 기간 연장해야"
오종렬 '올바른 과거청산을 위한 범국민위원회' 상임대표는 추도사에서 "나라의 부름을 받고 군에 입대한 장한 아들의 죽음에 국가는 책임을 다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오 대표는 "억울하고 원통하게 가신 모든 영령에 국가는 응분의 예우를 다하고, 자살이라도 그 책임이 국가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 말했다.

그는 또 "추모제가 한 차례 지나가는 의식이 아니라 유족의 슬픔과 괴로움을 달래고 불의한 폭력을 씻어버릴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시한에 얽매있는 군의문사위는 그 임무가 완료될 때까지 활동 기간을 연장하고 기구의 역량도 확대·강화해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추모사에 이어 아들을 잃은 어머니들이 직접 쓴 '하늘로 띄우는 편지'를 낭송해 장내를 숙연하게 했다.

"군복무 중 사망, 국가 책임지는 방안 마련하라"
고 이승민 상병(2002년 1월 사망) 어머니 김옥선씨는 편지에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보내고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정말 마음이 아득하다"라며 "이제 잊을 때도 됐건만 네가 좋아하던 음식들은 목에 걸려 먹어지지 않는구나"라고 하며 슬픔을 토로했다.

고 곽효철 상병(2002년 10월 사망) 어머니 김운자씨는 "스무 살 그 젊음을 피어보지도 못하고 꺾여 버린 내 아들, 너를 보내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네가 엄마 곁에 명예스럽게 돌아오는 그날까지, 그 자리를 찾아주기 위해 엄마는 싸울 것"이라고 다짐했다.

주종우 군·경의문사 진상규명과 폭력근절을 위한 가족협의회회장은 유족대표로 나와 "군의문사위는 2년여 동안 진상규명 노력으로 은폐, 축소, 조작된 사실을 밝혀냈다"라며 "그러나 진정 600건에 조사권한·인력이 부족하고, 올해 말 기간이 끝나는 한계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주종우 회장은 "이러한 한계로 인해 유가족들이 오랜 세월 염원해왔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의 길이 요원한 것인지 불안해하고 있다"라며 "조속한 입법으로 군복무 중 의문의 사망사건은 국가가 책임지는 명예회복 방안을 마련하라"라고 촉구했다.

 마지막 의식인 헌화 시간. 유가족들은 참아왔던 울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가슴에 묻고 지내 온 아들의 이름 앞에 선 어머니의 흐느낌은 차라리 절규였다. 유가족들은 아들과 형제와 부모의 이름을 국화로 쓰다듬었으며, 쓰러져 한참을 목놓아 통곡했다.

 "내 목숨보다도 귀한 아들아! 아이고, 원통해라. 원통해…"

"아우야! 가지 마라, 형이랑 같이 살자!"

"아들아! 조금만 더 기다려. 이 엄마가 꼭 명예회복시켜 줄테니."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www.ecumenian.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06.05 09:06 ⓒ 2008 OhmyNews
출처: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919196
2008. 11. 12. 12:57
한국전쟁을 치른 군 지도부 가운데 백선엽 장군의 경력은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화려하다. 해방 후 14년3개월의 군생활 중 대장으로 재직한 기간이 7년4개월이나 된다. 대령 계급장을 달고 북한의 남침에 맞선 그는 고속승진해 1952년 7월 육참총장이 됐고 다음해 1월 30대 중반에 군 최초의 4성 장군이 됐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새로 창설되는 야전군을 지휘하고자 육참총장직을 그만두고 야전군 사령관으로 부임했고, 다시 육참총장으로 복귀했다가 연합참모본부 총장을 거쳐 군복을 벗었다. 창군 초기의 혼란상을 고려해도 병영 생활의 절반 이상을 별 넷을 달고 근무한 셈이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만주 군관학교에 들어가기 전 당시로서는 명문인 사범학교를 나왔다. 한국전쟁이나 게릴라전 전술 등에 대해 그가 쓴 책들은 영어와 일본어로도 번역돼 전문가들 사이에 일정한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저서 <길고 긴 여름날>에는 국군 장성이 미군 사병을 구타했다가 혼쭐이 나는 대목이 나온다. 54년 9월 야전군 사령관이던 백 장군이 탄 지프를 미군 공병대 트럭이 추월해서 지나가는 사건이 벌어졌다. 차에 동승했던 준장 계급의 인사참모가 분을 삼키지 못하고 쫓아가 트럭을 세운 뒤 지휘봉으로 운전하던 사병을 때렸다. 백 장군은 의외의 사태로 번질 수 있다는 예감이 들어 인사참모를 대동하고 공병대를 찾아가 중대장과 구타당한 사병에게 사과했다. 인사참모에게는 서류상 견책조처를 취했다. 아니나 다를까 미군 사병의 가족이 지역 출신 의원에게 진정을 하고, 그 의원이 미국 정부와 이승만 당시 대통령에게 진상조사를 촉구하는 항의서한을 보내는 등 문제가 확대됐다. 유엔군 사령관이 도쿄에서 날아와 8군 사령관을 대동하고 찾아와 경위 설명을 요구한 것이다.

문제의 뿌리를 찾다 보면 옛 일본군의 야만적 관행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무조건 상명하복이 절대시되는 풍토에서 구타와 기합은 군인정신을 단련시키는 제도로 굳어졌다. 초창기 국군 지도부에 백 장군을 비롯해 일본 군대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은 창군사의 숨길 수 없는 한 단면이다. 일본은 패전 후 군대를 해체했다가 한국전쟁을 계기로 미국의 재무장화 방침에 따라 ‘경찰예비대’라는 기이한 명목으로 군대를 부활했다. 하지만, 옛 일본군이 나라를 나락에 빠뜨린 장본인이라는 경계심이 발동해 권위주의적 병영문화는 많이 사라졌다. 역설적으로 일제 식민지배의 고통을 당한 한국에서 옛 일본군의 나쁜 잔재가 끈질기게 남았다.

군에서 사병이 상급자에게 구타를 당하는 것은 오랜 기간 얘깃거리도 되지 못했다. 국군 대장이 구타문제로 미군 중대장과 사병에게 찾아가 사과를 한 지 30여 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입대한 청년이 구타 정도가 아니라 아예 싸늘한 재로 돌아오는 사건이 적지 않았다. 졸지에 사랑하는 아들, 동생, 남편을 잃고서도 유가족들은 진상규명 요구는커녕 하소연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주검은 바로 화장되고, 군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심약한 이들의 자살사건으로 종결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국민 다수의 무관심 속에서도 그나마 유가족들의 처절한 투쟁 끝에 ‘군의문사 진상규명 특별법’이 2005년 제정됐다. 진상규명위는 별도의 입법조처가 없으면 올해 말로 3년의 활동시한이 끝나지만, 접수된 사건의 절반도 처리하지 못했다. 과거사 정리를 거론하면 조건반사적으로 진저리를 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 희생자가 당신의 아들, 동생, 남편이라면 그럴 수 있을까? 이제 덮으면 진상은 영원히 어둠에 갇힌다.

김효순 대기자hyoskim@hani.co.kr

출처: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321270.html
2008. 11. 4. 10:19
Bella ciao
Danny boy
향수
동요메들리(고향의 봄, 송이송이)
그날이 오면
El nacimiento
너를 보내고
임을 위한 행진곡
이등병의 편지
혼자가 아닌 나
사계-남
만화경-여
부치지 않은 편지-독
그리운 이름-독


2008. 11. 4. 09:33
저녁에 일찍 잤더니 아침 일찍 깼습니다.
2008. 11. 3. 13:52
[]
2008. 11. 2. 19:59

       Fmaj7          E7sus4   E7    Em7         Am7
Why do birds suddenly appear every time you are near
Fmaj7                         Cmaj7
Just like me, they long to be Close to you
       Fmaj7                    E7sus4  E7    Em7           Am7
Why do stars fall down from the sky every time you walk by?
Fmaj7                         Cmaj7
Just like me, they long to be Close to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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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he day that you were born the angels got together
      Em7                          A7sus4 A7
And decided to create a dream come true
         F
So they sprinkled moon dust in your hair of gold 
                              G
and starlight in your eyes of blue

        Fmaj7               E7sus4 E7    Em7      Am7
That is why all the boys in town  follow you all around
Fmaj7                         Cmaj7       C
Just like me, they long to be Close to you
aah -aah -close to you